지난해 국립수산과학원이 집계한 결과 국내 전체 오징어 어획량에서 서해안 비중은 2015년 15%에서 최근 50% 수준까지 뛰어올랐다.
그런데 그 전쟁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고.일본을 모델로 삼은 개화파 지식인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에게도 당시 일본은 이상적인 국가였다.
그런데 임오군란으로부터 갑신정변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오만해진 청나라는 천 년이 넘도록 이어져 오던 전통적 조공관계를 뒤집었다.『월남망국사』가 베스트셀러였던 시대였다.해외 학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연구와 논쟁은 근거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 사이트가 시민의 역사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근대화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세력과 식민지화를 주도한 세력이 다르기 때문에 두 논쟁은 다른 듯하지만.
근대화의 실패가 식민지화와 반(半)식민지화를 야기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결국 을사늑약과 강제합병조약으로 귀결되었다.그렇기에 역사인식의 정치화는 너무나 위험하다.
주로 국내 학자들은 일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학계와 시민사회의 거리를 좁힐 때 더 이상 역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
기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악질적인 식민지화 과정이었다.그렇다고 직접 통치를 하는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는 아니었다.